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모두가 찾는 이선생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너무도 명료했다.
당연히 서영락(류준열)이지...ㅋ
모든 사람이 죽은 폭발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혼자 살아남은 캐릭터가 연락책이기까지 하다고?
그런 우연이 영화에 있을 리 없잖아...?ㅋ
영화의 우연을 믿지 않는 나는
'이 선생은 당연히 서영락이 이선생일 것이다.' 라고 결론 내어 영화를 보았고.
서영락이 이선생이라는 이유는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락'이라는 인물에 대해 잠시 집중해보자.
극 중 락은 처음부터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처음 락이 등장하는 병원 CCTV씬부터 불분명하게 나왔다.
흰 티를 입고 앞머리를 내린 남성의 모습은 누가 봐도 락이지만,
흰 티를 입고 앞머리를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락이라고 확실시하기는 어렵다.
어딘가 찝찝하고, 어딘가 수상하고.
그래서 이선생은 락인거였다.
락은 여러가지로 의심스럽다.
목표가 같을 뿐, 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게 거의 없다시피한 원호에게
"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시잖아요."
라는 말을 한다.
락이 하는 말들은 이상하게 온도가 너무 높더라;;
마치 원호가 믿는다는 걸 안다는 듯이, 원호가 믿지않는 게 더 이상하다는 듯이.
(어떻게 보면 사기꾼의 수법과 동일하다.
사기꾼들은 본인들이 먼저 믿음을 보인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서영락의 어릴 적 사진이 발견되고.
현재의 락과 사진 속 어린 서영락은 누가 봐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지적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원호에게 락은 막힘없이 과거의 상처들을 드러낸다.
그러고는 원호에게 오히려
"이 정도면 저는 서영락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한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정해달라는 듯.
이 장면에서 락이라는 인물은 언뜻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정해주길 바랄 정도로 선택권이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
혹은 자아가 거의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지만.
사실은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너는 나를 어떻게 정해서 볼 것이냐' 라고.
영화 속 락은 타인이 부르는대로 존재가 확정되고, 타인이 불러준 이름에 의해 정해진 역할대로만 살아간다.
그럼에도 자신을 정해주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자신을 한정짓고, 역할을 정해주는 타인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없다는 점을 보면.
자기선택권, 존중이라고는 정말 1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왔거나,
역으로 자신의 에고와 목표가 너무도 뚜렷해서 타인이 궁금하지 않거나이다 .
락은 믿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믿으니 상관 없다고 한다.
누군가가 보기엔 희생적이고 먼저 내어주는 사람 일수도 있지만.
사실 타인의 감정이나 사고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일 수도 있다.
락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인데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선생'이라는 단어에는 유독 감정을 내비친다.
"나한테는 기대도 됩니다."
라며 믿음을 요구하는 브라이언(차승원).
이선생에 대해서만 반응하던 락이 저 상황에서는 유독 더 크게 반응한다.
"이선생님이 주시는 겁니까? 이선생님이 절 알아요?"
락의 '이선생에 대한 의문'은, 다른 인물들의 '이선생에 대한 의문'과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
진하림, 원호 등 다른 인물들은 이선생은 누구인가, 이선생은 언제 오나, 이선생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나 등등 '이선생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락은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이선생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락이 이선생이 존재한다고 이렇게까지 확신을 갖는 이유는
락이 이선생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거나, 락이 이선생이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락의 언어선택에서 이상함을 느낀 건 브라이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선생의 사부가 자신의 아버지로 알려졌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이선생으로 생각하거나,
이선생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만 봐왔을텐데.
일개 연락책인 락은 이선생은 당연히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이선생이 나를 알아요?'라고 묻다니.
아마도 브라이언이 막무가내로 이유 없이 락을 일선에서 제외시키고자 한 이유는.
락의 질문에서 이유 없는 불안감을 느껴서거나
락이 이선생이라고 믿게 되어서 일 것 같다.
락은 저 질문을 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이선생이 맞는가에 대하여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선생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 말고 또 다른 이선생이 존재할까봐 불안해하면서도,
다른 이선생이 나오면 바로 죽여서 유일한 이선생이 되면 되고.
자신이 그토록 찾는 이선생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웃기다가도,
타인들이 그토록 찾는 이선생이 자신임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가 서글펐을 것 같다.
결국 그렇게 락은 브라이언과 박병창에게 복수를 하고.
몇몇 사람들에게 자신이 진짜 '이선생'임을 티낸다.
그것도 아니면 그 전에 이선생을 사칭하다 죽음을 맞이한 짝퉁 이선생들인지.
누가 자신이 쫓던 이선생인지 알 수 없다.
원호는 자신이 누구를 쫓던 것인지 혼란스러워져
원호는 락이 끓여준 커피를 마시며
"너는 살면서 행복했었던 적 있냐?"
라고 묻는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락도 행복한 적이 없었지만.
원호 또한 삶이 행복하진 않았으리라.
결말 부분에 총소리가 들리고 원호가 얼굴에 핏방울을 묻힌 채 걸어나온다.
하지만 왠지 원호 또한 허무한 표정으로 나온다.
원호가 그저 수정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락을 죽인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애초에 원호가 가장 절실히 찾던 이선생은 ∞모양의 반지를 가지고 있던 공식적인 이선생(=브라이언)이었을테니.
<이선생 잡기>를 끝내기 위해 락을 죽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수사는 결론이 필요하다는 서장의 말에 의해 종결 되었으니.
락을 쏜 이유는 락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 같다.
영화는 친절하다.
비교적 이입하기 쉬운 주인공 원호가 자신이 무엇을 쫓던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원호를 보면서 관객들은 내가 쫓던 이선생이 어떤 이선생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게 더 파고들면 이선생의 정의만 바꾸면 이선생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고생 수정을 죽인 브라이언도 이선생,
진짜 이선생의 폭발사고를 카피해 판을 다시 짠 브라이언도 이선생,
그 가짜 이선생의 정보를 마약반에 팔아넘기려던 청소아줌마 연옥도 이선생,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고 의심하던 락도 이선생.
'내가 쫓던 이선생은 누구인가', '나는 누가 죽었을 때 악인이 처단되었다는 쾌감을 느껴야했나.'
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서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모두가 이선생일 수 있다.
심지어 원호조차.
원호를 이선생이라고 정하면 원호가 이선생이라는 단서는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수정이 '그래서 나만 약했냐?'고 하며 찌르던 대사에서 원호도 약을 했음을 알 수 있고.
락의 '저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시잖아요.'라는 대사도 원호가 이선생임을 알고 했을 수 있고.
마약반에서 10년을 넘게 있으면서 이선생을 못 잡은 것도 본인이 이선생이라 정보망을 빠져나갔을 수 있고.
락의 '자기 자신을 믿어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자신이 이선생이라서 일 수 있고.
원호가 굳이 락을 쏜 이유도 자신이 진짜 이선생이라, 이선생을 사칭한 락을 죽이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
등등.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believer다.
(believer들의 특징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이 말하던 이선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너도 나도 '쟤가 이선생이다.', '얘가 이선생이다.', '내가 이선생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영화 속 현실이 난장판이다보니 '진짜 이선생은 쟤야!'라고 생각하고 보면 누구나가 이선생이 될 수 있더라.
농아들이 이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도 이해가 된다.
믿기지 않으면 직접 믿고 다시 보시오. 그 믿음에 분명 보답 받는다...ㅋ
결론을 또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는데...
결론 : 차승원 조진웅 류준열
섹시해서라도 여러 번 다시 돌려봐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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