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시간들 중 최고로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을 때 아니, 최고로 망가져서 모든 것들이 두렵게만 느껴질 때.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지 않을 때에도, 이유 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 때에도, 사람들한테 오해 받고 손가락질 받을 때에도, 그래서 무례한 언행들만 골라서 할 때에도, 갑자기 애처럼 파고들 때에도, 조그만 거 가지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예민하게 화낼 때에도, 이유 없이 심술나서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때에도, 알콜 중독에 빠져 인생의 적이 내 자신이 되었을 때에도.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켜주던 사람이다.
함께 하는 동안 그는 내게 너 때문에 지친다고 한 적도 없었고,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적 없었고, 그 흔한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고, 질린다는 말은 더더욱 한 적 없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이 징징거리면 떠나갈 법도 한데 떠나가기는 커녕 늘 웃는 얼굴로 대했다.
하루는 웃기만 하는 그에게 약이 오르기도 하고, 왜 화를 내지 않는지 궁금해서
너는 이런 내가 싫지도 않냐고,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내게 왜 화를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 부모님처럼 나를 포기한 게 아닐까, 어쩌면 그는 내가 너무도 한심해서 화를 낼 필요성조차 못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이미 사랑이 끝났는데 떠나가지는 못하겠어서 남아있어주는 게 아닐까.
여러가지로 두려워하는 내게 돌아온 그 사람의 대답은
"이런 너한테 어떻게 화를 내겠어. 나는 너가 뭘 해도 귀여워."
라는 따뜻한 말이였다.
그 말은 단순한 남녀의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서서, 거의 부성애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던데.
내 인생의 첫 기회는 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난 그 기회를 모질게 찼다.
그에게 묻지도 않고 혼자서 잘라버린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그는 나에게 모든 전후사정을 물어보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나 혼자서 속단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
지나고 보니 그게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
그는 그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런 대접을 받으면 안되는거였는데.
내게 그의 반만큼이라도 여유가 있었더라면, 배려가 있었더라면 그를 그렇게 쳐냈을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 조차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사과할 수가 없다.
그와 다시 만나고 싶다거나, 보고프다거나 그런 쉬운 감정이 아니다.
그저 최근에 그에 대한 생각이 늘었고, 그를 아예 지우고자 하니 인생의 일부분이 통째로 없어지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빌고 있다.
그와 끝난지는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이렇게 뒤늦게에서야 이별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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