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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예술의 연속/처음 보는 영화

블랙 위도우 후기 (뭔가 되려다 만 영화 / 굉장히 주관적인 후기 주의)

by JENNiNE_your red ruby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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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영상 유무 관련해서 들어오신 분들을 위해 먼저 적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번 영화도 쿠키영상 있습니다!


리뷰에 앞서 본 필자는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던 배우를 굉장히 아끼던 한 사람임을 밝히고 시작합니다.

개인적인 애정과 기대가 많았던 만큼 아쉬운 점이 많아 불평, 불만, 지적이 굉장히 많습니다.
혹시나 즐겁게 보셨고, 즐거운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JENNiNE's 배우, 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요한슨 배우는 매력적이지만

유니크한 목소리+뛰어난 외모(얼굴, 몸매 어디 하나 안 떨어지죠)로 인해 섹슈얼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았고,

이런 제한적인 역할로 인해 훌륭한 연기력을 저평가 받아온 시절이 길었습니다.


섹슈얼한 매력이 강하다 못해 강력한 여배우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점은
타고난 강점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도 늘 섹슈얼한 역할로만 소비된다는 점,

그리고 젊은 시절을 돈이 되는 섹슈얼한 역할만 맡으며 살다가 결혼하고 볼 수 없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굉장히 아쉬운 여배우분들이 많은데, 굳이 거론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 뺍니다.)


그런데 스칼렛 요한슨 배우는 달랐습니다.
타고난 장점이나 특성을 내세워 섹슈얼한 캐릭터만 맡으며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풍부한 감정을 연기하며 오로지 섹슈얼한 이미지로 소모되는 것을 탈피했고,

타고난 매력이나 특성, 장점을 스크린에 뽐내듯 보여주는 '스타'라기 보다는

영화 내 캐릭터의 매력, 성격, 의미 등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려는 '배우'였습니다.

내니 다이어리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강점으로 손꼽히던 몸매를 감추다 못해 어딘가 후줄근하고, 소박하고, 헐렁한 옷들만 입고 나와 극 중 내니(보모)인 '애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때때로 영화를 보다보면 배우가 가진 카리스마나 매력적인 페이스 등의 개성에 압도되어(실제로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자아를 눌렀음에도 새어나왔든,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과시했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놓치고 길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스칼렛 요한슨 배우는 확실하고, 독보적이고, 강력하고, 유니크한 개성을 가졌음에도

본연의 개성을 감추고 맡은 역할, 캐릭터를 전달하고는 합니다.

"블랙 위도우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어떤 특별한 식단을 유지했나?" 라는 기자의 물음에

옆에 있는 로다주를 보며 "왜 나한테는 몸매를 위해 토끼풀을 먹냐 같은 질문이 오는거죠?" 말하고,

기자에게 " 트레이닝이랑 물도 마시고, 초록풀때기도 많이 먹었어요." 라고 당당하게 응답하고도

대중들에게 크게 욕 먹지 않고 '성차별 질문에 대처하는 스칼렛 요한슨'이라고 회자될 수 있던 이유는

스칼렛 요한슨이 '스타'가 아니라 '배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이다보니 말이 길어지는데 한 줄로 요약하자면

스칼렛 요한슨은 한 철 소비 되고 마는 예쁜 스타가 아니라 아름다운 배우 그 자체였다는 겁니다.

 

 

JENNiNE's 캐릭터, 블랙 위도우(나타샤)

(만화를 정주행하지 않아서 오로지 영화로 접한 블랙위도우만 말하고자 합니다.)

개개인마다 블랙 위도우에게서 본 의미나 매력은 전혀 다르겠지만,

제가 느낀 블랙 위도우에게서 본 의미나 매력은 '베일' 입니다.
전투 중 보이는 블랙 위도우는 다른 히어로들 같은 절대적인 초능력이나 강력한 물리적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 환경을 잘 파악한 후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굉장히 괜찮은 전투력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이제는 영웅이 된 아이언맨의 판단 오류로 인해 지구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건이 벌어진 적은 있어도,

블랙 위도우의 판단 오류로 인해 지구의 안전이 위협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른 히어로들에 비해 타고난 능력 자체는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걱정되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전투 상황 중 보여주는 합리적 이성과 임무를 잊지 않는 목표지향성일 것 입니다.

하지만 전투 밖에서 보이는 사람 나타샤 르마노프는 조금 다릅니다.

따뜻하고, 어떻게 보면 조금은 비합리적인&감정 베이스의 판단을 내려 관객들을 당황시키고는 하죠.
나타샤 르마노프는 여러 남자 히어로와 사귀었다가 헤어져서 불편한 동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연인 관계였던 시절의 앙금으로 누구 하나 휙 버리지 않고, 감정적으로 징징대지도 않고,

입으로만 떠들어 재끼는 애정이 아니라 끈질기고, 집요하고, 책임감 있는 애정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나타샤를 원하면서도 스스로가 가진 불안정성, 그리고 그 불안정성에서 파생된 자기혐오에 휩싸여

'괴물 같은 우리가 함께 해봤자 평범한 미래가 있냐.'라며 밀어내는 배너 박사에게

나타샤는 '평범한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다.'라며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면서까지 배너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고.

가족이 있는 호크아이를 대신해 스스로를 내던져 희생하는 희생적인 면모까지 보여줬습니다.

 

주변 동료들에게 다짜고짜 감정적인 유대감을 요구하고, 국뽕(한 국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후 갖게 된 막중한 책임감인지, 국가의 아이콘이 된 본인에게 심취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에 가득찬 단합력을 강요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옛친구(버키) 때문에 같이 일하던 동료 아이언맨을 2대1로 두들겨패며 입으로만 떠들어재끼는 warm heart를 보여주던 캡틴과 달리.

 

블랙 위도우는 감정을 스파이라는 직업(베일)로 가려두고 있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희생하는 진짜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전투 중 보이는 블랙 위도우는

상대방이 자신을 여자로 느끼든말든 관심 없고,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본인이 맡은 여러가지 임무들(그게 어떤 기관에서 받은 임무이든)을 한 사건에서 완벽히 처리하는 쿨한 왕언니 같지만.

 

전투 밖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나타샤는

누군가와 함께 확정적이고 안정적인 애정을 주고 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고,

작아진 상대방에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면서까지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겉으로 보기엔 요리조리 달라붙는 박쥐 같은 스파이지만,

베일 하나 거두면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의리있고, 용기있고,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한 사람이라 이겁니다.

 

 

하지만 기대하던 영화 블랙 위도우는?

웃기지 않는 유머와 세대 체인지를 위한 신 캐릭터 소개,

과하게 들어간 페미니즘적 요소,

캐릭터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 부족한 액션씬들이 거슬렸습니다.

 

- 웃기지 않는 유머
'너랑 난 친자매가 아니야.'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까진 꽤 괜찮았습니다.
팬들을 많이 챙기는 마블이 또 하나의 팬서비스를 해줬다고 생각했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씬부터는 굉장히 거슬리더라고요.
르마노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샤 르마노프의 본격적인 감성을 발견 할 수 있는 순간이지 싶었는데,

마블 특유의 메마른 B급 감성 덕분에 나타샤 르마노프의 이야기는커녕 블랙위도우의 감정선 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블랙 위도우인데 오로지 새로 나올 캐릭터들 소개만을 듣느라 바쁜 장면이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warm heart를 강조하기 위해 중2병스러운 대사는 잘만 집어넣던 마블이

왜 한 때는 유일한 여성히어로였던 블랙위도우에게는, 특히나 나타샤에게는 모든 걸 집어삼키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책꽂이 앞, 양어머니인 멜리나와 대화하는 씬에서

'자신을 잃지 말라고 했잖아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말을 삼키는 나타샤를 보며

'그치. 나타샤는 이런 캐릭터지.'라고 이해는 했지만.

웃기지도 않은 유머들 통째로 삭제하고 나타샤에게 발언권을 줬으면 어땠을까,

블랙 위도우라는 베일을 걷어주고 그 안의 나타샤를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 세대 체인지를 위한 신 캐릭터 소개
개인적으로 굉장히 화가 많이 나던 부분입니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토르는 시리즈로 줄줄이 내주던 마블이 블랙 위도우는 하나로 끝.

마음은 상하지만, 머리로는 명료하게 이해됩니다.

 

블랙 위도우를 좋아하고 말고와 별개로

블랙 위도우의 전투 능력은 다른 히어로에 비해 살짝 떨어져서(위도우가 스파이지, 솔져가 아니기 때문에),

액션 영화를 액션 영화답게 만들기 힘들기는 합니다.

아예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리스크를 뚫고 정말 어렵게 나온 솔로 무비이고,

캐릭터의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하는 영화라는 걸 알기에 더욱 귀했고,

개봉일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블랙 위도우를 보는 내내 불쾌하더라고요.

 

유튜버 분들은 블랙 위도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며 추천한다고 영상을 올렸지만...

글쎄요...
제가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많아서일까요?

다른 캐릭터들 소개하기에 급급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블랙 위도우가 중심이 되지 않는 장면들 머리로는 대충 이해합니다.

시대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 라고 외치고 싶고,
그 시대에 걸맞는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가족과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거고,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 웃기지도 않는 식탁 대사들을 보여줬을 거고,

다 큰 성인 스파이가 막내 티 못 벗고 징징거리는 씬을 넣었겠죠.

그럼에도 화는 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블랙 위도우' 솔로 무비에서

주인공인 블랙 위도우를 들러리 취급하다 못해,

새로운 세대를 소개 하기 위해 블랙 위도우에 대한 예우를 완전히 잊은 것 같았거든요.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블랙 위도우'를 보러 온 건지, '블랙 위도우의 두 번째 가족들'을 보러 온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 과하게 들어갔는데 딥하지는 않은 페미니즘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초반부터 많은 빌드업이 있었습니다.
가족 내에서 가장 역할을 맡고 있던 레드 가디언이 오하이오에 남는 것이 좋다는 여자 셋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오하이오를 떠나자는 결정을 한 후,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다는 딸들을 솔져들의 손에 맡깁니다.

그리고 레드룸에서는 드레이코프의 손가락 명령질로 여자아이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죠.

전작들에서 블랙위도우가 왜 그렇게 boys라는 말에 태클을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서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태스크 마스터가 주체성 있고(의사결정권 있는), 자신만의 타고난 강점을 잘 이용하는 전투를 진행하기 보다는

전투하는 상대의 행동을 mimic해서 전투를 진행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씬도,

남성(극 중 드레이코프와 레드가디언)에게 의사결정권을 넘기고 뭐 하나 선택할 줄 모르던 옐레나가

같은 여성인 옥산나에게 해독제(계몽)를 받고도

블랙위도우와 비슷한 전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씬도 괜찮았습니다.


심지어 레드 가디언이 레드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상처 받았을 딸들에게

위로나 공감은커녕 '난 너희를 훌륭하게 만들었어.'라며 공감능력 상실한 대사를 퍼붓는 씬조차 좋았습니다.
현실에는 약자나 여성 한정 공감 능력이 사라지는 멍청한 인간들이 가득한데,

그 현실 속 멍청한 인간들을 비꼬아 보여주는 것 같아서 + 블랙유머 같아서 괜찮았죠.


페미니즘에 환호하든, 비판하든, 참여하고 있든, 질려버렸든, 긍정적으로 보든, 비관적이든.

그러니까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든.

여성의 착취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페미니즘이라는 이념 때문에 레드룸을 운영하고 있는 빌런인 드레이코프가 별 거 아닌 빌런으로 비춰진 것은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영화 속 드레이코프라는 캐릭터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거지같은 부류의 남자들과 닮아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의 힘도 없고, 남을 평가하기 전에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교양도 없고,

유머감각이 출중해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것도 아니고, 외모가 화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보를 곱게 쓰는 것도 아니고,

그 와중에 자신이 여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강압과 강요를 통해 얻은 전능감에 취해 무지함을 숨기지도 않는 천박함까지.

 

페미니즘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왜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올라서 사회를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차게 해주는지

알려주는 현실적인 부류의 남성 대표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드레이코프가 '블랙위도우'라는 영화 속 최고 빌런이라는 겁니다.
드레이코프는 수많은 여성(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들이죠)들을 세뇌하고, 착취하고, 쓰고 버리는 무기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지식이나 말빨, 하다못해 같은 군인들 사이에서 장군이라고 불릴 만큼의 물리적 힘이라도 있던가 해야 맞는데

영화는 빌런 캐릭터가 갖춘 강력한 힘이나 능력이 뭔지는 보여주지 않고,

빌런을 그저 자신이 남자라는 뽕에 가득찬 찐따남으로 표현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깝더라고요.
페미니즘적 요소가 너무도 다분히 들어간 나머지, 빌런력 모지란(현실성 있는) 빌런을 소환하는 바람에

블랙 위도우는 별 시답지 않은 빌런 처리하는 히어로가 되었다는 거.

하필이면 그 현실성 있고, 매력적이지 않은 빌런이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의 장례식 같은 영화에 출연해서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의 장점이나 특성은 고스란히 묻어두고 별 시답잖은 '여성' 히어로로 만들었다는 거.

 

웃기지도 않는 유머 다 드러내고, 영화 초반부에 드러낸 무겁고 진중한 페미니즘적 감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위도우가 맞서는 저 남자가 얼마나 강하고 꺾기 힘든 빌런인지 어필하는 게 낫지 않았나,

그 시간에 감정까지도 연기해내는 스파이인 블랙 위도우의 이면, 나타샤 르마노프의 감정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액션 영화에 페미니즘 코드가 들어간 게 문제가 아닙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으면 확실하고, 딥하게 들어갔어야만 했는데

'그냥 지금 시대엔 페미니즘이 유행이니까' 라며 얇실하게 들어갔다는 거.

그 덕에 영화가 거북하게 느껴지고,

결과적으로 페미니즘 그 자체인 캐릭터를 오염시켰다는 거.

그게 문제인 겁니다.


- 캐릭터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는 부족한 액션씬
블랙위도우는 주어진 환경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감정 연기에 굉장히 능한 캐릭터입니다.
평상시엔 boys라는 말에 발끈하면서도,

전투 상황에는 자신의 이념이나 신념 따위 다 집어던지고 연약하고 감정적인 여성을 연기해

자신이 속한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자신의 목표를 이뤄내죠.
캐릭터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장면은 어벤져스1 액션씬.

의자를 뒤로 밀자 두려워하는 척,

예쁘장한 아가씨에 불과하다는 남자의 말에 '내가 예뻐?'라고 되물으며

남자에게 여성으로서의 외양적 매력을 인정 받으려는 puppy 같은 면모를 연기하더니.

전화 한통 받고 자신을 속박한 의자를 이용해서 상대를 때리고, 발을 찍고.

결국 자신을 속박한 의자와 상대를 같이 부시고, 제일 높은 계급의 남성을 철로 속박하고는 하이힐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가죠.


어떤 환경에 놓여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블랙 위도우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연기하고,

자신을 속박하는 장애물조차도 기회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데 '블랙 위도우'라는 영화에서의 블랙 위도우는 이런 특징을 활용하는 장면이 별로 없달까...

 

태스크 마스터의 mimic 능력을 보여주는 전투 씬은 캐릭터 소개상 OK / 옐레나와의 신뢰와 애정, 자매력을 보여주는 전투 씬은 의미상으로 OK / 레드룸 멤버에게 쫓기다 레드룸 멤버가 드레이코프에 의해 죽는 장면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기계 부품 마냥 희생 당하던 여성'이라는 의미로 OK / 태스크 마스터가 바튼처럼 화살 쏴서 차 폭파 시키는 씬은 팬서비스나 태스크 마스터 소개상 OK / 드레이코프와의 심리전 이후 드레이코프의 개소리를 듣지 않고 두들겨 패는 씬은 감정적으로 OK / 다른 세뇌 당한 레드룸 멤버들과 싸우는 장면도 '남성 중심 사회에 익숙해진 해방 되기 전의 여자들은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남성에게 달려들기 보다는 해방된 같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는다.'라는 의미로 OK / 비행기 공중씬은 화려함으로 OK.

근데 잘 생각해보면 NOT OK입니다.

 

블랙위도우의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하고, 주변 소품 잘 이용하는 특성을 보여준 씬은 자매들의 전투씬 뿐이었던 거 같습니다.

어디서부터가 진짜였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엇는지 분간할 필요 없게 만드는 감정 연기를 보여준 씬은 드레이코프와의 심리전 뿐이었고요.
뭐 대충 머리로는, 전개상으로는 다 OK인데.

블랙위도우의 특성을 보여주냐라고 하면 OK가 아닌 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JENNiNE's 후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정리하고 정리해도 문장이 흩어질 정도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자꾸만 이게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를 보내주는 최선의 방법이었나 의문이 듭니다.
이념과 메시지, 새로운 세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급급해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너무 가려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는

페미니스트라서, 혹은 남자 히어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이라서 매력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블랙 위도우는 블랙 위도우 그 자체로 멋있고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어떤 순간엔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에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슈퍼우먼이지만,

어떤 순간엔 가운 차림으로 남성의 품에 파고들어 편안하게 살고 싶어하는 여성입니다.
어떤 순간엔 불완전한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울고 싶어하는 어린 여자아이 같지만,

어떤 순간엔 그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여자아이가 주는 감정을 인정하고 충분히 받아들이고 느낀 이후 성숙해진 사람이고요.

(그 모든 혼란스러운 면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했기에 연약함을 연기할 수 있었고, 로키조차 완벽하게 속이는 스파이가 된 거겠죠.)

저는 그래서 블랙 위도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여성으로서(혹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욕망 간의 충돌을 가진 여자였고,

그 여러가지 욕망의 충돌로 인해 나타나는 모순적인 언행들이 매력적인 캐릭터였는데.
이렇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면들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시대에 유행하는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부속품으로 쓴 것 같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습니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언젠가 지금도 과거로 남겠죠.
부디 이 영화를 5년 뒤에 되돌려봤을 때

구시대적 유행하던 이념을 전달하기 위해 희생된 나타샤 르마노프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대변해주고 줄여준 블랙 위도우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실망감과 허무함, 분노를 느끼고 있지만

5년 뒤에 봤을 때는 '덕분에 여성 인권이 좋아졌다.'라고 말하며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5년 뒤에 보면 더 착잡할 것 같네요.

이제 슬슬 마블의 시대가 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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