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참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고구려풍?의 씩씩함과 용맹함도 가졌고.
어떻게 되겠지~ 라는 해맑음도 가지고 있었고.
환경을 장악하며 기존의 분위기를 흡수하여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하기도 한다.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않았고 또 그만큼 주변에 여자가 많았다.
그들에게 있어 여자친구는 인생의 트로피이자 자랑거리다.
물론 남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여자를 전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어느정도 있는데.
유독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들은 그 성향이 짙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여자를 자기 인생의 성실함 척도로 인식해서 소중하게 여기는 남자들이라기보단
자신의 여자를 내가 이런 여자 만날 정도로 잘나가~를 보여주는 트로피 정도로 인식하는 남자들이었달까.
여자를 순간 순간의 성공을 증명해주는 지표로 보기에
전자 부류의 보수성을 보이며 자신의 여자를 각별히 아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순간을 살아가는 이 남자들은 다른 남성들의 3년치 애정표현을 일시불로 해주고는 했다.
그만큼 강렬하게 받았기에 왜 한결 같지 못하냐고 미워하고 원망할 수가 없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게 된 이유부터가 그들의 넘치는 열정이었고, 삶에 대한 애착 덕분이었으니까.
(그 과도한 열정과 애착을 오래 가지고 가기엔 그들이 힘들테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너무 빠르게 다가오지 말라고 짚어주는 것뿐. 식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호기심이 많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고는 했다.
나는 오래된 책방에서 나는 틱틱한 냄새를 좋아하는데, 그들은 늘 인스타 핫플을 찾아다니며 줄을 서서 경험하고는 했고.
나는 야심한 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들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가만히 앉아있는 걸 못 참고는 했다.
바람 안피는 남자는 없다고 말하며 남자들의 바람끼를 정당화하는 뻔뻔함(혹은 천박함)도 갖췄는데.
얌전히 듣다가 '그러면 너도 바람피겠네?' 라고 할 때면 '나는 그냥 남자가 아니야~' 라며 은근슬쩍 넘어가고는 했다.
은근슬쩍 넘기는 방식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그 불안함이 긴장감을 줘서 더 욕심났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는 게 좋았고, 느슨해지지 않는 게 좋았고, 나쁜 여자가 되지 않는 게 좋았다.
노력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늘 내 성취욕과 소유욕을 더더더 불타오르게 하고는 했다.
가끔 나만 애타나 싶어서 그들의 질투를 보고야 말겠다며 '나 오늘 클럽갈거야.' 류의 말을 하고는 했는데.
그들은 참 하나 같이 쿨하게 '그러시던가요~' 라는 태도로 일관했고.
결국 그 쿨함에 심술나서 '나 클럽 간다는데 왜 안 말려?' 라고 하면.
'너 가서 아무 일 없을거잖아. 난 너를 믿는건데?' 라고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또 당했다며 패배한 느낌이 드는 건ㅋㅋ 어휴)
이런 착한(?) 그들을 소유하는 건, 그들에게 소유 당하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애초에 그들은 타고난 성향 자체가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만 참으면 더 좋은 게 올거라고 해도 오로지 오늘의 행복이 중요하다.
(그런 그들에게 안정감을 원하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짓 아닐까.)
순간을 사는 그들이 내게 소유된다고 해도 그 또한 순간일 뿐이고.
안정감, 자제력 없는 삶을 사는 그들에게 소유되기란 큰 희생과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그들은 태어난 환경부터가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들의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들의 아버지는 늘 바쁘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집안을 케어하기엔 너무나 바쁜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이상적인 남자상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성격 좋은 이 남자들은 아버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정당화하고 원망하지 않는 긍정성까지 갖췄다.
그게 코미디라면 코미디다.
그런 아버지의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는 두 가지의 초이스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로는 더더욱 자식에게 몰입하는 것.
이 경우 어머니는 옆에 있지 않아주는 아버지에 대해 알게 모르게 하소연을 하게 되고.
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이들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욕망을 익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우는 소리, 아쉬운 소리를 들어가며 미묘한 표정변화나 목소리톤을 익혀 여성의 욕망을 예민하게 캐치해나가는 능력를 습득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어머니의 밑에서 자란 남자들은 우는 여자 싫어하고, 억척스러운 생활력을 가진 여성을 원한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시아버지를 아들에게 투영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시월드는 120% 예정되어있다.)
두번째는 자신에게 여성으로써의 삶을 되찾아줄 남자를 찾는 것.(=다른 남자를 찾는 것.)
이 경우는 조금 최악이다.
가족에 대한 관념이 형성될 기회가 부족했던 (혹은 관념 자체가 아예 파괴된) 상황인거다.
남자는 어머니를 통해 여자를 배우고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만들어나간다던가.
그런 남자의 성장기에 어머니가 없었다는 건 원하는 여성상에 대해 정해놓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그런 확실하지 않은 기준 덕분에 이 여자 저 여자한테 혹하게 만드는 바람끼가 생성된다.
결핍 때문인걸까.
내가 좋아하던 남자들은 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낮에는 어머니를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이었지만, 밤에 술만 들어가면 욱하는 어머니가 싫다고 하는 아들이었다.
그들의 어머니는 왜곡된 여성관을 가지게 된 시발점이자 또 여성이 주는 사랑을 갈구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존재였나보다.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어머니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은 만나는 여자에게도 투영된다.
예를 들어 '낮에는 앞치마를 입고 요리를 해주며 유년시절 내가 못 받은 사랑을 채워주는 고결한 어머니, 밤에는 앞치마만 입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더러운 말들을 속삭이는 섹시한 여자여야해.' 같은.
대놓고 말하든, 대놓고 말하지 않든 이 가지가지하는 요구와 압박을 받는 입장에선 너무 힘들고 불편한데.
또 어쩌겠나.
좋아하는데.
그렇게 가지가지 하는 이 남자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며 일상에 침투해 마음에 깊게 파고들면.
나는 이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좌절하고는 했다.
그를 포기하자니 나는 그에게 '유년시절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너 알아서 하세요. 난 내 할 일 할테니.'라며 아들의 성장 과정에 없었던 그의 아버지.
겉으로는 아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대했지만, 사실은 참 냉랭하고 무관심했던.
그렇다고 그를 포기하지 않고 그 괴리를 없애는데에 집중하려고 들면 나는 그의 '불안한 어머니'가 된다.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로운 어머니 말이다.
그의 삶에 침투해서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된 김에 그의 삶에 불안정을 가져다주는 '순간성'을 견제해보려고 하면.
내 정신은 어느새 그의 자유를 향한 갈망에 두들겨맞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매력적인 그들을 소유하기도,
그렇다고 내 모든 주도권을 넘겨주며 그들에게 소유되기(이들을 믿고 이들에게 철저히 소유되기엔, 이들은 어딘가 엉성하다.)도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천천히 놓게 된다.
매력적인 그들은 나를 원망하겠지만.
내가 천천히 마음을 놓게 된 원인은 끝까지 모를 것이다.
그들에겐 애초에 자기 자신과 견주어 볼만한 건강한 남성상이 제대로 탑재 되어있지 않고.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여자를 안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그 뿐이면 다행이다.
그들은 오히려 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소유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다.
쥐면 쥐는대로 잡혀살 것 같던, 단순하고 유쾌하고 쉬워보이던(?) 그들은.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뇌구조를 지녔고.
그 사실을 깨닫고도 이미 마음이 깊어져서 놓지 못하고 그들 머리에 들어가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욕망들과 트라우마들 사이에 서서 하나 둘 조율해나가다보면.
어느새 나는 여성과 엄마 그 사이의 어떤 존재가 되어 둘 중 어떤 부분에서도 확실한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으며.
그런 상황을 한 인간으로써의 인류애 따위로 버텨낸다고 해도 그건 내가 그들에게 소유되어가는 과정이었을 뿐, 나는 그들을 소유할 수 없었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들에게 내 모든 통제권을 내어줄 수는 없으니.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앞이 깜깜한 연애는 맞았다.
내 옆에 있으면서도 방황을 하던 그들이 방황을 끝내고 진정 내 옆을 지킨다고 한들.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겠다며 충성을 맹세 받는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어벤져스 속 토니스타크와 페퍼포츠 밖에 안되지.
결국 난 페퍼처럼 토니가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야 할거고,
매일 그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야만 하니.
가져도 가진 게 아니다.
그리고 그들도 불안감에 늘 날이 서있는 나를 보며 힘들었을테지.
애초에 안 맞는 사람들끼리 소모적인 연애를 한 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그 소모적인 연애가 예쁜 추억들로 남았다는 게. 웃기다면 웃기다.)
많은 실망감과 상처, 무력감을 주던 그들이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그저 잘 맞는 여자를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중심을 소유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나 같은 여자 말고.
자유를 주고, 주변부만 소유해도 괜찮은, 마음이 건강하고 튼튼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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